2월이 다 됐는데도 FA 계약을 맺지 못하고 있던 김하성이 드디어 소속팀을 찾았다. 탬파베이 레이스였다. 김하성은 탬파베이와 2년 총액 2,900만 달러에 합의했다. 올해 1,300만 달러를 받고 내년에는 1,600만 달러를 받는 조건이었다. 올해 325타석에 들어서면 200만 달러를 받을 수 있는 옵션도 포함됐다.
김하성이 어깨 수술에서 회복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 정도 계약은 선수와 구단 모두에게 나쁘지 않은 규모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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탬파베이와 사인한 김하성.
그런데 놀라운 건 옵트아웃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었다. 김하성이 올 시즌을 마치고 옵트아웃, 그러니까 FA를 신할 수 있는 조건을 넣은 것이다.
옵트아웃은 기본적으로 엄청난 선수 친화 계약이다. 선수가 마음만 먹으면 바로 FA 자격을 얻을 수 있는 덕분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김하성이 올해 잘한다면 당연히 옵트아웃을 선언하며 장기계약을 추진할 것이고, 올해 부상에서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면 당연히 옵트아웃을 하지 않은 채 내년 연봉 1,600만 달러를 수령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탬파베이로선 있으면 무조건 손해인 옵트아웃을 넣은 건데, 극강의 효율성을 자랑하는 탬파베이가 이 조건을 넣은 것이니 이상한 것이다. 정상적인 탬파베이의 무브라면 총 2년 2,900만 달러의 경우 1년 1,300만 달러 보장에 다음 해에 1,600만 달러짜리 클럽옵션을 넣었을 것이다. 바이아웃으로 200만 달러 정도만 준다고 한다 해도, 김하성도 지금 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이 조건을 받았을 것 같은데, 옵트아웃을 포함시켰으니 정말 깜짝놀랄 만한 계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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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후 옵트아웃이 포함된 김하성의 계약.
김하성의 계약 방식은 에이전트인 스콧 보라스가 자주 쓰는 방식이다. 지난해 3루에서 최고 수비력을 자랑하는 맷 채프먼(Matt Chapman)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3년 5,400만 달러 계약을 맺었는데, 매년 옵트아웃을 넣었다. 채프먼이 지난 시즌 좋은 활약을 펼치자 샌프란시스코는 6년 1억 5,100만 달러 연장계약을 안겼다. 채프먼의 완벽한 승리였다.
그런데 채프먼은 샌프란시스코였고, 김하성은 탬파베이였던 게 다르다. 탬파베이는 샌프란시스코처럼 선수 친화적인 계약을 하는 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하성이 잘 한다고 해도 탬파베이와 연장계약할 가능성도 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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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트아웃 계약 이후 연장계약에 성공했던 맷 채프먼.
현재 탬파베이의 유격수를 살펴보면 김하성이 필요한 선수긴 맞다. 지난해에는 호세 카바예로(Jose Caballero)와 테일러 월스(Taylor Walls)가 번갈아 맡았지만, 유의미한 성적은 내지 못했다. 김하성의 가세는 공수 모두에서 분명 도움을 줄 수 있긴 하다.
- 탬파베이는 완더 프랑코(Wander Franco)가 대형사고를 친 뒤 팀의 유격수 플랜이 망가져 버렸다. -
◇ 호세 카바예로·테일러 월스·김하성 성적
이름 PA AVG OPS wRC+ OAA DRS fWAR bWAR
호세 483 .227 .630 83 3 -3 1.9 1.6
테일러 252 .183 .529 60 -3 12 -0.2 1.4
김하성 470 .233 .700 101 4 2 2.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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탬파베이 입장에선 과다 지출이 맞는 김하성의 계약.
하지만 김하성의 복귀 시기는 빨라야 5월, 늦으면 6월 이후다. 탬파베이가 지금의 전력으로 최강지구인 아메리칸리그(AL) 동부지구에서 살아남아 가을야구를 할 가능성은 매우 낮으니, 김하성을 4개월 정도 쓰는 값으로 1,300만 달러를 준 셈이다.
빅마켓 구단도 아닌 리그의 대표적인 스몰마켓이자 최고의 가성비를 추구하는 구단이 '윈나우 모드'도 아닌데 부상 회복이 물음표인 유격수를 4개월 정도 쓰는 값으로 이 돈을 안긴다? 진짜로 뭔가 이상하다.
◇ 탬파베이 고액 연봉자 (5M 이상)
이 름 연봉
김하성 13M
브랜드 라우 10.5M
얀디 디아즈 10M
대니 잰슨 8M
잭 리텔 5.7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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탬파베이가 스탑갭으로 쓰기엔 너무 비싸 보이는 김하성.
게다가 탬파베이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 팜에서 데뷔시킬 코어 유격수 유망주도 있다. 파이프라인 전체 9위 유망주이자, 팀 1위 유망주인 유격수 카슨 윌리엄스(Carson Williams)다. 지난해 더블A서 풀타임을 뛰었던 만큼, 부상만 없다면 올해 하반기나 내년 초 데뷔가 유력하다.
때문에 올 시즌 성적 욕심도 크게 없는 탬파베이로선 스탑갭 유격수로 굳이 김하성을 쓰지 않아도 되는데 필요 이상의 거액을 지출한 셈이다. 게다가 올해 꼴아박으면 잔류할 수 있도록 클럽옵션 대신 옵트아웃이 포함된 2년 계약까지 안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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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전체 9위에 위치한 탬파베이의 카슨 윌리엄스.
여러 정황을 살펴보면, 탬파베이가 노리는 것은 김하성의 트레이드가 아닐까 싶다. 예상대로 김하성이 5월에 복귀해서 이전의 기량을 보여준다면 김하성의 가치는 급등하게 된다. 시즌 중 유격수가 급해진 윈나우 팀 중 한곳에 트레이드 데드라인 직전에 넘겨 버리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만약 김하성이 부진에 빠져 옵트아웃을 하지 않고 팀에 남는다 해도, 내년에 기량을 회복하면 내년 데드라인때 다시 트레이드하면 된다. 실제로 탬파베이는 그런 방식으로 자주 유망주를 수혈해 왔다.
물론 김하성이 망하면 이런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탬파베이는 분명 김하성이 부활한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이런 계약을 맺었을 가능성이 크다.
일부 국내 언론에선 김하성이 잘 한 뒤 이번 시즌 후 옵트아웃을 하려고 할때 탬파베이가 퀄리파잉오퍼를 날려 이를 거절할 경우 보상픽을 얻으려는 생각도 있는 것으로 전하는데, 이는 실현 가능성이 낮을 것 같다. 2023년 성적 보다 잘 했을 경우, 예를 들면 예전의 수비력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300타석 이상에 20홈런 가까이 치며 OPS 0.8을 돌파한다면 퀄파를 날릴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 성적을 내긴 쉽지 않아 보인다. 4년 동안도 못 해본 기록인데, 부상 복귀 이후에 갑자기 이 성적을 낸다? 아니라고 본다.
또 만약 김하성이 폭주해서 탬파가 퀄파를 던진는 일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김하성이 거부하기보다는 받아들일 가능성이 클 듯하다. 퀄파는 FA 선수들에게 사실상의 족쇄인데, 내년 연봉을 2200만 달러 정도 주겠다는데, 이걸 거부하고 나가진 않을 것 같다. 퀄파를 없애 버리고 자유의 몸으로 나가는 게 장기계약에 훨씬 유리하고, 1년 재수를 더 해도 김하성의 나이는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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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를 앞두고 부상을 당한 김하성.
결론적으로 선수 보는 눈이 깐깐하기로 유명한 탬파베이가 김하성의 부활을 점쳤다는 것이어서, 김하성의 재활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좋아하던 선수였는데, 꼭 부활했으면 좋겠다.
여하튼 덕분에 김하성으로서는 좋은 계약을 맺게 됐다. 본인의 별명답게 '어썸'한 계약이다.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에서 4년간 2,800만 달러를 벌었는데, 2년 만에 보장 2,900만 달러 최대 3,100만 달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어깨 부상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4년 7,000만 달러급의 계약도 가능했을 텐데, 이런 가정은 의미가 없으니 패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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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김하성의 위상. 지난해에도 2023년과 비슷한 성적을 찍었다면 진짜 4년 70M 이상이 가능해 보였다.
김하성이 올해 복귀해 예전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탬파베이는 고민없이 7월 말 다른 팀으로 좋은 대가를 받고 보내지 않을까 싶다. 윈나우 팀으로 가서 포스트시즌에서 뛸 수 있다면 김하성에게도 좋은 일이고, 나쁘지 않은 반대급부를 받을 탬파베이 입장에서도 나쁜 일이 아니다. 김하성과 탬파베이의 올시즌 행보가 정말 기대된다.
그리고 김하성이 알동으로 간 덕분에, SPOTV에서도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탬파베이의 경기를 자주 중계해 줄 것 같다. 볼티모어 팬 입장에서 우리 팀이 한국 TV에 자주 등장하니 그 또한 좋은 일이다.